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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 very well : Life of an ordinary programmer

개발자가 이런 날에 굳이 회사로 출근을 해야할까?

1. 2010년 1월 4일
엄청난 양의 눈이 내렸다. 내 기억에 내가 다섯 살이던 해에 내린 눈 이후로 서울에 그렇게 눈이 많이 온 것을 본 게 처음이었던 것 같다. 그 때는 삼성전자 프로젝트때문에 서초동 삼성타운으로 출근을 하던 때였는데, 눈 때문에 도로가 마비되자 지하철로 사람이 몰려서 지하철 마저도 올 스톱이 되었었다. 지하철 3호선을 타고 교대역까지는 도착을 했는데, 강남역으로 가기 위한 2호선이 오지를 않았다. 환승 통로까지 사람으로 꽉 차 있었고, 결국에는 밖으로 나와 교대역에서 강남역까지 걸어가는 모험을 택했는데… 군데 군데 무릎까지 쌓여있는 눈을 헤치고 지하철 한 정거장을 걷는데 30분이나 걸려 겨우 사무실에 도착했다. 뉴스에는 눈 때문에 수도권이 마비가 되었다고 나오고, 당시에 일하던 18층에는 약 300여 명이 일하고 있었는데, 점심 시간때까지 반도 출근을 못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몇몇은 출근하다가 집으로 돌아갔다고도. 관련 기록을 찾아보려 검색을 했더니 위키 페이지가 나온다. 2010년 1월 4일 한국 중부 폭설

2. 2011년 7월 27일
오늘 어제에 이어 어마어마한 폭우가 쏟아졌다. 이것 역시 말로 설명이 불가능. 작년에 눈이 내렸을 때에는 가만히 있으면 괜찮았지만, 비는 또 그런게 아니었다. 눈은 쌓일 뿐이지만, 비는 다 휩쓸고 가기 때문에… 게다가 배수가 제대로 되지 않을 경우 유수가 역류하여 더 큰 피해를 가져오기도 하고. 시간당 100mm가 넘는 양이라고 한다. 시간당 몇 밀리미터 라고 하는 것이 감이 오지가 않기 때문에, 강우량을 수치화 시키는 것을 개인적으로 좋아하지 않는데 실제로 비 내리는 걸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양동이로 들이 붓는다 라는 표현 말고는 딱히 떠오르는 말이 없을 정도였다. 오늘 비 피해 사진 모음, 2011년 7월 한국 중부 집중 호우

3. 이런 날에 과연 출근을 해야할까?
나는 개발자이고, 직급은 대리다. 일 주일에 회의라고는 팀 주간회의, 아주 가끔 기획팀과의 회의가 전부이다. 보통은 내 자리에 앉아서 모든 업무를 처리한다. 커뮤니케이션은 주로 메신저로, 사내 메일로 한다. 내 책상 위에는 IP전화기가 한 대 있지만, 한 달에 10회 미만으로 사용하는 듯 하다.

나는 출근을 일찍하는 편이라, 게다가 우리 동네에는 파란 하늘까지 보이는 아침이어서 어제만큼은 비가 오지 않겠지 하는 생각을 하며 8시 쯤에 사무실에 도착했다. 정규 출근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점점 비가 많이 오더니, 회사 앞 사거리가 물에 잠기기 시작한다. 트위터와 인터넷 게시판들을 보니 난리도 아니다. 서울 각 지의 침수 사진이 올라온다. 팀원들은 물벼락을 맞은 생쥐꼴로 사무실에 속속 도착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가관이다. 지하철이 끊기고, 지하철 역사가 침수되고, 강남대로, 테헤란로가 물에 잠긴다. 강변북로, 올림픽대로에는 통행 제한 조치가 내려지고, 경춘고속도로는 통제가 되고, EBS방송국은 침수 끝에 라디오방송이 중단됐단다.

대체, 회사가 뭐길래 이런 날씨에 평소의 2배 이상의 시간을 들이면서, 온 몸이 젖은 채로 출근을 해야 하는가?
회사가 아니더라도 우리 개발자들은 일할 수 있는 여건을 충분히 만들 수 있는데, 왜 꼭 회사까지 가야하는걸까?

나 뿐 아니라 많은 개발자들은 회사 컴퓨터에 원격접속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놓고 다닌다. 이는 필시 비상 시를 대비하기 위함인데, 여기서 말하는 비상 시라는 게 운영중인 서비스의 비정상적 동작, 야간 정기 점검, 개발중인 프로그램의 오류 발생 등의 때만을 생각하는 데에서 우리 모두가 출근을 감행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각 회사들은 퇴근 후에 문제가 있을 때에만 원격으로 접속해서 업무를 처리하라는 연락을 할 것이 아니라, 이런 준 재난 상황에도 직원들에게 연락을 하여 반드시 와야할 경우에만 출근을 하고, 재택 근무가 가능한 상황이라면 그렇게 하라는 식으로 연락을 취해주면 좋지 않을까. 비가 와서 집이 잠기는데, 회사에서 일 똑바로 할 사람이 어디있겠나. 도로가 잠기고 버스가 끊기고, 지하철 역이 침수되서 집에 어떻게 갈 지 고민만 하고 있는데 일을 어떻게 할 수 있겠나.

뭐가 더 나은지 생각할 줄 아는 관리자가 많아졌으면 좋겠다. 회사의 경영진은 직원들을 피고용인으로 어떻게 부려먹을까(문제가 있을 때에만 원격으로 처리하라!)만 고민할 것이 아니라, 파트너로 어떻게 함께 일을 할까(폭우, 폭설로 출, 퇴근이 힘드니, 가능한 상황이라면 원격으로 업무를 처리하라!)를 고민할 줄 알았으면 좋겠다. 이런 작은 부분에서의 차이가 큰 업무 만족도의 차이, 더 나아가 성과의 차이를 만들 수 있음을 아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관리자나 경영진이 이런 생각을 하지 못한다면, 자유롭게 이런 방법도 있다는 건의를 할 수 있는 문화가 형성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도 가져본다.

* 우리 회사는 좋은 회사편에 속한다. 이 글을 쓰는 도중에 인트라넷에 오늘, 내일은 자율 출퇴근을 하라는 글이 올라왔다. 침수 피해가 있을 경우 신고를 해 달라는 당부의 말도 들어있다. 직장인이 회사로부터 배려를 받는다고 느끼는 것은 이런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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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dyway

2011년 7월 27일 , 시간: 2:0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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